사건번호
2023다261302
기타(금전)
📌 판시사항
[1] 분묘기지권의 성립 유형 및 각 유형별 지료지급의무의 내용
[2] 승낙형 분묘기지권 성립 당시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에 지료에 관한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성립하였더라도, 토지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할 수 있는 경우
📋 판결요지
[1] 분묘의 기지인 토지가 분묘의 수호·관리권자 아닌 다른 사람의 소유인 경우에 그 토지소유자가 분묘 수호·관리권자에 대하여 분묘의 설치를 승낙한 때에는 그 분묘의 기지에 관하여 분묘기지권을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이하 ‘승낙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타인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이하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자기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그 토지를 양도하면서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은 경우에 분묘기지권이 성립한다(이하 ‘양도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양도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분묘기지권자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부터 토지소유자에게 그 분묘의 기지에 대한 토지 사용의 대가로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지료 지급의무와 관련하여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단한 적은 없다. 다만 대법원 2021. 9. 16. 선고 2017다271834, 271841 판결은 분묘 설치 당시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에 지료 지급의무의 존부나 범위 등에 관하여 약정한 것이 있으면 그 약정에 따라야 함을 전제로 하여, 그 약정의 효력은 분묘기지의 승계인에 대하여도 미친다고 판시하였다.
[2] 관습법으로 인정된 권리의 내용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그 권리의 법적 성질과 인정 취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 및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관습법상 인정되는 용익물권인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지료 인정 여부를 확정함에 있어서도 그 권리의 특수성 및 그 권리가 인정된 사회적 배경과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의 관계, 그들의 이익 상황 및 합리적 의사, 민법상 지료증감청구권(제286조)이나 차임증감청구권(제628조) 등의 규정 및 그 기초를 이루는 사정변경의 원칙의 취지, 다른 분묘기지권 유형과의 균형 등을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당시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에 지료에 관한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성립하였더라도, 분묘 설치 당시의 인적 관계의 변경, 분묘기지의 사용기간, 지가·공과금의 상승이나 토지 활용가치의 변화, 당사자의 합리적인 의사나 신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지료를 인정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한 경우에는 토지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할 수 있고, 분묘기지권자는 그때부터 객관적으로 상당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 판례 전문
【원고, 피상고인】 의료법인 ○○○재단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파트원 담당변호사 박정교)
【피고, 상고인】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진봉헌 외 1인)
【원심판결】 전주지법 2023. 7. 6. 선고 2022나6204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망 소외 1(1975년 사망)은 처인 망 소외 2(1985년 사망)와 사이에 장남인 소외 3과 차남인 소외 4 등을 자녀로 두었다.
나. 소외 1은 생전에 차남 소외 4에게 원심 판시 분할·합병 전 토지(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를 증여하였다. 장남 소외 3은 소외 1과 소외 2의 각 사망 후 이들의 분묘(이하 ‘이 사건 분묘’라 한다)를 당시 소유자 차남 소외 4의 승낙 아래 이 사건 토지에 차례로 설치하였다.
다. 이후 이 사건 토지가 전전 양도되었고, 최종적으로 원고가 소외 5로부터 증여를 받아 2004. 7. 23.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라. 피고는 소외 3의 장남으로 이 사건 분묘의 수호·관리권자이다.
마. 원심은 소외 3과 소외 4가 하나의 ‘제사공동체’라는 등의 이유로 이 사건 분묘에 관하여는 ‘승낙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였다고 볼 수 없고, ‘제사공동체’ 외부의 제3자에게 이 사건 토지가 양도된 때 ‘양도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보아, 이 사건 분묘의 기지에 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2021. 6. 22.)부터의 지료 지급을 구하는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부가적·가정적으로 소외 3과 소외 4 사이에 지료에 관한 무상 약정이 있었고, 그 효력이 이 사건 토지의 승계인인 원고에게 미친다고 가정하더라도 원고는 민법 제286조의 지료증액청구권을 유추적용하여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변경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다고 판단하였다.
2. 토지소유자의 승낙에 의하여 성립하는 분묘기지권의 지료에 관하여 유상 약정이 없는 경우 지료 지급의무의 존부
가. 분묘기지권의 성립 유형 및 유형별 지료 지급의무에 관한 법리
1) ① 분묘의 기지인 토지가 분묘의 수호·관리권자 아닌 다른 사람의 소유인 경우에 그 토지소유자가 분묘 수호·관리권자에 대하여 분묘의 설치를 승낙한 때에는 그 분묘의 기지에 관하여 분묘기지권을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0. 9. 26. 선고 99다14006 판결 등 참조. 이하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분묘기지권을 ‘승낙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② 타인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대법원 1955. 9. 29. 선고 4288민상210 판결, 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하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분묘기지권을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③ 자기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그 토지를 양도하면서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은 경우에 분묘기지권이 성립한다(대법원 1967. 10. 12. 선고 67다1920 판결 등 참조. 이하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분묘기지권을 ‘양도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2)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 이하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 ‘양도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분묘기지권자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부터 토지소유자에게 그 분묘의 기지에 대한 토지 사용의 대가로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다295892 판결 등 참조).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지료 지급의무와 관련하여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단한 적은 없다. 다만 대법원 2021. 9. 16. 선고 2017다271834(본소), 2017다271841(반소) 판결은 분묘 설치 당시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에 지료 지급의무의 존부나 범위 등에 관하여 약정한 것이 있으면 그 약정에 따라야 함을 전제로 하여, 그 약정의 효력은 분묘기지의 승계인에 대하여도 미친다고 판시하였다.
나.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지료에 관한 유상 약정이 없는 경우, 토지소유자가 일정한 요건 하에 지료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관습법으로 인정된 권리의 내용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그 권리의 법적 성질과 인정 취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 및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관습법상 인정되는 용익물권인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지료 인정 여부를 확정함에 있어서도 그 권리의 특수성 및 그 권리가 인정된 사회적 배경과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의 관계, 그들의 이익 상황 및 합리적 의사, 민법상 지료증감청구권(제286조)이나 차임증감청구권(제628조) 등의 규정 및 그 기초를 이루는 사정변경의 원칙의 취지, 다른 분묘기지권 유형과의 균형 등을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당시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에 지료에 관한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성립하였더라도, 분묘 설치 당시의 인적 관계의 변경, 분묘기지의 사용기간, 지가·공과금의 상승이나 토지 활용가치의 변화, 당사자의 합리적인 의사나 신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지료를 인정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한 경우에는 토지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할 수 있고, 분묘기지권자는 그때부터 객관적으로 상당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상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과거에 우리 사회에서 분묘 설치에 관한 승낙 및 무상 약정이 흔히 이루어져 왔던 것은 순수한 개인적 차원의 결정이었다기보다는 시대적인 상황과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한 현상이었다고 보인다. 그런데 무상 약정의 기초가 된 경제사회적·문화적 배경과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
가) 조선시대에는 산림공유(山林公有)의 원칙에 따라 분묘가 주로 설치되던 임야에 대하여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적 임야소유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사회구성원들의 임야에 대한 권리의식은 거의 없거나 매우 낮았고 임야의 경제적 가치도 미미하였다. 또한 분묘가 해당 토지에서 차지하는 면적의 비중도 낮아서 분묘의 존재가 해당 토지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거나, 토지소유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서는 주택단지나 공업단지의 조성 등과 같이 임야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 거래가 빈번해짐에 따라, 임야의 경제적 가치 및 소유권을 보호할 필요성이 늘어났고, 분묘의 존재로 인해 분묘기지뿐 아니라, 나머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도 증대하였다.
나) 과거에는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였으므로 분묘를 설치할 토지를 보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의 토지에 조상의 시신을 매장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분묘설치자와 토지소유자의 관계는 대개 종중, 이웃, 친척 등의 우호관계였다. 반면, 오늘날에는 화장·봉안시설이 늘어나고, 장묘 문화가 점차 매장에서 화장 중심으로 변하고 있으며, 토지개발로 인해 분묘의 수호·관리자와 토지소유자 사이에 인적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3조 및 제24조는 공설묘지, 법인묘지 등에 대하여 사용료·관리비의 징수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 시행의 영향으로 적법하게 설치된 공설·사설 묘지에 관해서도 사용료·관리비를 납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라)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대법원은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및 양도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지료 지급의무를 잇달아 인정하였다. 최근 하급심 판례에서도 분묘기지권자가 토지소유자에게 기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2) 승낙형 분묘기지권은 성립 요건 및 존속기간 등에 관하여 당사자가 실제 의욕한 것 이상으로 토지소유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토지소유자가 분묘 수호·관리권자에 대하여 분묘의 설치를 승낙한 때에는 그 분묘의 기지에 관하여 분묘기지권을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위 대법원 99다14006 판결 등 참조), 토지소유자가 단순히 분묘 설치에 동의하였을 뿐, 물권설정의사는 명확히 없었던 경우에도 ‘분묘기지권’이라는 물권이 인정될 여지가 많다. 나아가 존속기간에 관하여도 당사자 사이에 약정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권리자가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계속하고 분묘가 존속하고 있는 동안’ 분묘기지권이 존속한다고 보기 때문에(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5다44114 판결 등 참조), 실제로 존속기간에 관하여 별도의 명시적 약정이 체결되는 사례가 드문 현실에서 사실상 영구적인 물권이 토지 위에 성립하고 토지소유자에 대한 소유권 제한은 과중하다.
나) 분묘 설치에 관한 청약과 승낙만으로 성립하는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요건이나 분묘기지의 무상 사용을 용인하던 사회적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단계에서 지료나 존속기간과 같은 계약조건에 관한 교섭 및 결정의 기회가 충분히 보장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재판에서 무상 약정이 인정되는 사례들은 토지소유자가 적극적으로 무상 사용을 보장하려는 의사를 가진 경우나 명시적인 무상 약정이 체결된 경우보다, 토지소유자가 상당 기간 무상 사용을 용인한 사정 등을 기초로 무상 약정의 묵시적 성립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다) 토지에 관한 무상 이용관계인 사용대차계약에서 존속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사용대차계약 당시의 사정, 차주의 사용기간 및 이용 상황, 대주가 반환을 필요로 하는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평의 입장에서 대주에게 해지권을 인정할 수 있다(대법원 2018. 6. 28. 선고 2014두14181 판결 등 참조). 이는 토지소유자(대주)의 소유권 제한을 배려한 결과이다. 같은 맥락에서 승낙형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지료에 관한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있는 사안에서 일정한 요건 하에 지료를 인정함으로써 소유권 제한에 관한 대가 내지 보상에 관해서 합리적 조정을 허용할 필요가 크다.
3) 분묘기지권 성립 당시 무상이었다고 하여 영구적인 무상 사용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당사자의 합리적인 의사나 신뢰에도 부합하지 아니한다.
가) 토지소유자와 분묘기지권자의 분묘의 설치 및 존속에 관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상 약정을 한 토지소유자의 의사가 사정변경 여부와 상관없이 영구적인 무상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토지소유자로서는 토지의 가치나 분묘기지권자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분묘 설치 당시와 같은 상황에서는 무상 사용을 용인하지만, 토지개발 등으로 인해 무상 약정의 기초가 된 사정이 변경된 경우에는 분묘기지권의 존속은 보장하더라도 적정한 사용대가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분묘설치자로서도 토지소유자의 호의를 얻어 분묘를 설치하면서 동일한 인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나) 한편 분묘에 매장된 사람이 토지소유자와 분묘기지권자의 공동 선조인 경우와 같이 토지소유자와 분묘기지권자가 분묘의 설치 및 존속에 관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는 그들 사이의 무상 약정에 큰 문제가 없다. 승낙형 분묘기지권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토지(분묘기지)가 제3자에게 양도된 시점부터이므로, 분묘기지권의 존속으로 인해 사용·수익이 제한되는 불이익을 입게 된 토지양수인의 의사나 기대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토지양수인 입장에서는 양도형 분묘기지권과 마찬가지로 소유권 제한에 상응하여 지료를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토지양수인이 넓은 면적의 임야 등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설치된 분묘의 존재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4) 대법원은 이미 나머지 두 유형, 즉 양도형 및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지료 지급의무를 인정하였다. 승낙형 분묘기지권에 관해서만 지료에 관한 유상 약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영구 무상의 권리를 보장할 경우, 다른 유형의 분묘기지권과 균형이 맞지 않고, 거래안전을 해할 수도 있다.
가) ‘자기 소유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도 그 토지를 양도하면 그때부터 양도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하는데(위 대법원 2020다295892 판결 등 참조), ‘타인 소유 토지’에 무상 승낙을 받고 분묘를 설치한 사람은 사실상 영구히 지료 지급의무를 면한다는 것은 형평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타인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자기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보다 대세적으로 더 강력한 무상 사용권을 보장받는 것은 사회일반의 법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나) 분묘기지권은 등기 없이 성립하고 존속하므로 분묘기지권의 성립 유형이나 지료에 관하여 공시할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실제 토지양수인의 입장에서 분묘 설치 시기 또는 분묘 수호·관리권자(제사주재자)를 특정하거나, 분묘기지권의 성립 유형 및 지료에 관한 약정의 존부 등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승낙형 분묘기지권’에 관해서만 분묘 설치 당시에 유상 약정이 없었다는 이유로 나머지 유형들과 달리 영구적인 무상 사용권의 제한을 토지양수인에게 감내하도록 한다면, 거래안전을 해할 수밖에 없다.
5) 분묘기지권에 관하여는 민법상 명문의 근거가 없더라도 일정한 요건하에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변경 청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가) 분묘기지권의 경우, 성문법상 권리가 아니라 관습법상의 물권이고, 분묘기지권의 내용 중에는 명문의 근거 규정 없이 판례를 통해 형성된 부분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 무상 약정이 있는 분묘기지권의 유상 전환 청구권도 당사자의 의사와 거래 관행을 반영한 판례를 통해 합리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나)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미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기 전에는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지만,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때부터는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전환을 인정한 바 있다.
다) 분묘기지권은 발생이나 소멸, 변동 등에 이르기까지 권리의 내용이 민법상 지상권과 동일하지 않으며,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변경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나 당위성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무상의 지상권에 관하여 민법 제286조에 따른 지료증액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례(대법원 1999. 9. 3. 선고 99다24874 판결)는 무상의 승낙형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유상으로의 전환을 인정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3. 이 사건에 관한 판단
가. 이 사건 분묘는 설치 당시 분묘 수호·관리권자인 소외 3이 토지소유자인 소외 4의 승낙을 받아 설치한 것이므로, 이 사건 분묘에 관하여는 승낙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분묘 설치 당시에 분묘 수호·관리권자와 토지소유자가 동일인이 아니었던 이상, 양도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한다고 볼 여지는 없다. 그럼에도 원심이 이 사건 분묘에 관하여 양도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였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나.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지료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있더라도 유상으로의 전환을 인정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므로, 분묘기지의 현재 소유자인 원고는 지료를 청구할 수 있다.
1) 이 사건 분묘에 매장된 사람은 당시 이 사건 토지의 소유자였던 소외 4의 부모이다. 더욱이 이 사건 토지는 소외 4가 스스로 형성한 재산이 아니라, 부친인 소외 1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다. 이 사건 분묘 설치 당시 토지소유자인 소외 4와 분묘 수호·관리자인 소외 3 사이에 무상 약정이 있었더라도 이는 위와 같은 특수한 인적 관계가 전제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사건 분묘가 설치된 후 이 사건 토지의 소유자가 수차례 변경되어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내지 매장된 망인들 사이의 특수한 인적 관계는 단절되었다.
특히, 소외 4와 소외 3은 이 사건 분묘에 매장된 망인들의 자녀로서 이 사건 분묘의 설치 및 존속에 관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관계였다. 따라서 양도형 분묘기지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외 3의 무상에 관한 신뢰보다는 분묘기지권의 존속으로 인해 사용·수익의 제한이라는 불이익을 실제로 입게 된 양수인들의 의사나 기대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타당한데, 토지양수인들은 소유권 제한에 상응하여 지료를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기대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2) 이 사건 분묘 중 소외 1의 분묘는 1975년경, 소외 2의 분묘는 1985년경에 각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설치된 소외 2의 분묘를 기준으로도 설치 시점부터 이 사건 소장 송달일(2021. 6. 22.)까지 이미 36년이 넘게 경과하였다.
3) 이 사건 토지는 이 사건 분묘가 설치된 후 이용상태나 활용가치가 현저히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건 토지는 원래 지목이 ‘전(田)’이었으나, 원고가 소유권을 취득한 후 그 지상에 병원 등의 건물을 신축하는 등으로 개발하여, 이 사건 분묘기지를 제외한 대부분이 ‘대지’로 변경되었다.
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 속에 유상으로의 변경 청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 그 청구일부터 피고의 지료 지급의무를 인정한 원심의 부가적·가정적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
4. 결론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마용주(재판장) 노태악 서경환(주심) 신숙희
【피고, 상고인】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진봉헌 외 1인)
【원심판결】 전주지법 2023. 7. 6. 선고 2022나6204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망 소외 1(1975년 사망)은 처인 망 소외 2(1985년 사망)와 사이에 장남인 소외 3과 차남인 소외 4 등을 자녀로 두었다.
나. 소외 1은 생전에 차남 소외 4에게 원심 판시 분할·합병 전 토지(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를 증여하였다. 장남 소외 3은 소외 1과 소외 2의 각 사망 후 이들의 분묘(이하 ‘이 사건 분묘’라 한다)를 당시 소유자 차남 소외 4의 승낙 아래 이 사건 토지에 차례로 설치하였다.
다. 이후 이 사건 토지가 전전 양도되었고, 최종적으로 원고가 소외 5로부터 증여를 받아 2004. 7. 23.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라. 피고는 소외 3의 장남으로 이 사건 분묘의 수호·관리권자이다.
마. 원심은 소외 3과 소외 4가 하나의 ‘제사공동체’라는 등의 이유로 이 사건 분묘에 관하여는 ‘승낙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였다고 볼 수 없고, ‘제사공동체’ 외부의 제3자에게 이 사건 토지가 양도된 때 ‘양도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보아, 이 사건 분묘의 기지에 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2021. 6. 22.)부터의 지료 지급을 구하는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부가적·가정적으로 소외 3과 소외 4 사이에 지료에 관한 무상 약정이 있었고, 그 효력이 이 사건 토지의 승계인인 원고에게 미친다고 가정하더라도 원고는 민법 제286조의 지료증액청구권을 유추적용하여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변경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다고 판단하였다.
2. 토지소유자의 승낙에 의하여 성립하는 분묘기지권의 지료에 관하여 유상 약정이 없는 경우 지료 지급의무의 존부
가. 분묘기지권의 성립 유형 및 유형별 지료 지급의무에 관한 법리
1) ① 분묘의 기지인 토지가 분묘의 수호·관리권자 아닌 다른 사람의 소유인 경우에 그 토지소유자가 분묘 수호·관리권자에 대하여 분묘의 설치를 승낙한 때에는 그 분묘의 기지에 관하여 분묘기지권을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0. 9. 26. 선고 99다14006 판결 등 참조. 이하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분묘기지권을 ‘승낙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② 타인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대법원 1955. 9. 29. 선고 4288민상210 판결, 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하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분묘기지권을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③ 자기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그 토지를 양도하면서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은 경우에 분묘기지권이 성립한다(대법원 1967. 10. 12. 선고 67다1920 판결 등 참조. 이하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분묘기지권을 ‘양도형 분묘기지권’이라 한다).
2)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의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 이하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 ‘양도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분묘기지권자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부터 토지소유자에게 그 분묘의 기지에 대한 토지 사용의 대가로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다295892 판결 등 참조).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경우, 지료 지급의무와 관련하여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단한 적은 없다. 다만 대법원 2021. 9. 16. 선고 2017다271834(본소), 2017다271841(반소) 판결은 분묘 설치 당시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에 지료 지급의무의 존부나 범위 등에 관하여 약정한 것이 있으면 그 약정에 따라야 함을 전제로 하여, 그 약정의 효력은 분묘기지의 승계인에 대하여도 미친다고 판시하였다.
나.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지료에 관한 유상 약정이 없는 경우, 토지소유자가 일정한 요건 하에 지료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관습법으로 인정된 권리의 내용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그 권리의 법적 성질과 인정 취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 및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관습법상 인정되는 용익물권인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지료 인정 여부를 확정함에 있어서도 그 권리의 특수성 및 그 권리가 인정된 사회적 배경과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의 관계, 그들의 이익 상황 및 합리적 의사, 민법상 지료증감청구권(제286조)이나 차임증감청구권(제628조) 등의 규정 및 그 기초를 이루는 사정변경의 원칙의 취지, 다른 분묘기지권 유형과의 균형 등을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당시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사이에 지료에 관한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성립하였더라도, 분묘 설치 당시의 인적 관계의 변경, 분묘기지의 사용기간, 지가·공과금의 상승이나 토지 활용가치의 변화, 당사자의 합리적인 의사나 신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지료를 인정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한 경우에는 토지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할 수 있고, 분묘기지권자는 그때부터 객관적으로 상당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상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과거에 우리 사회에서 분묘 설치에 관한 승낙 및 무상 약정이 흔히 이루어져 왔던 것은 순수한 개인적 차원의 결정이었다기보다는 시대적인 상황과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한 현상이었다고 보인다. 그런데 무상 약정의 기초가 된 경제사회적·문화적 배경과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
가) 조선시대에는 산림공유(山林公有)의 원칙에 따라 분묘가 주로 설치되던 임야에 대하여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적 임야소유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사회구성원들의 임야에 대한 권리의식은 거의 없거나 매우 낮았고 임야의 경제적 가치도 미미하였다. 또한 분묘가 해당 토지에서 차지하는 면적의 비중도 낮아서 분묘의 존재가 해당 토지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거나, 토지소유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서는 주택단지나 공업단지의 조성 등과 같이 임야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 거래가 빈번해짐에 따라, 임야의 경제적 가치 및 소유권을 보호할 필요성이 늘어났고, 분묘의 존재로 인해 분묘기지뿐 아니라, 나머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도 증대하였다.
나) 과거에는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였으므로 분묘를 설치할 토지를 보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의 토지에 조상의 시신을 매장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분묘설치자와 토지소유자의 관계는 대개 종중, 이웃, 친척 등의 우호관계였다. 반면, 오늘날에는 화장·봉안시설이 늘어나고, 장묘 문화가 점차 매장에서 화장 중심으로 변하고 있으며, 토지개발로 인해 분묘의 수호·관리자와 토지소유자 사이에 인적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3조 및 제24조는 공설묘지, 법인묘지 등에 대하여 사용료·관리비의 징수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 시행의 영향으로 적법하게 설치된 공설·사설 묘지에 관해서도 사용료·관리비를 납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라)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대법원은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및 양도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지료 지급의무를 잇달아 인정하였다. 최근 하급심 판례에서도 분묘기지권자가 토지소유자에게 기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2) 승낙형 분묘기지권은 성립 요건 및 존속기간 등에 관하여 당사자가 실제 의욕한 것 이상으로 토지소유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토지소유자가 분묘 수호·관리권자에 대하여 분묘의 설치를 승낙한 때에는 그 분묘의 기지에 관하여 분묘기지권을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위 대법원 99다14006 판결 등 참조), 토지소유자가 단순히 분묘 설치에 동의하였을 뿐, 물권설정의사는 명확히 없었던 경우에도 ‘분묘기지권’이라는 물권이 인정될 여지가 많다. 나아가 존속기간에 관하여도 당사자 사이에 약정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권리자가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계속하고 분묘가 존속하고 있는 동안’ 분묘기지권이 존속한다고 보기 때문에(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5다44114 판결 등 참조), 실제로 존속기간에 관하여 별도의 명시적 약정이 체결되는 사례가 드문 현실에서 사실상 영구적인 물권이 토지 위에 성립하고 토지소유자에 대한 소유권 제한은 과중하다.
나) 분묘 설치에 관한 청약과 승낙만으로 성립하는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요건이나 분묘기지의 무상 사용을 용인하던 사회적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단계에서 지료나 존속기간과 같은 계약조건에 관한 교섭 및 결정의 기회가 충분히 보장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재판에서 무상 약정이 인정되는 사례들은 토지소유자가 적극적으로 무상 사용을 보장하려는 의사를 가진 경우나 명시적인 무상 약정이 체결된 경우보다, 토지소유자가 상당 기간 무상 사용을 용인한 사정 등을 기초로 무상 약정의 묵시적 성립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다) 토지에 관한 무상 이용관계인 사용대차계약에서 존속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사용대차계약 당시의 사정, 차주의 사용기간 및 이용 상황, 대주가 반환을 필요로 하는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평의 입장에서 대주에게 해지권을 인정할 수 있다(대법원 2018. 6. 28. 선고 2014두14181 판결 등 참조). 이는 토지소유자(대주)의 소유권 제한을 배려한 결과이다. 같은 맥락에서 승낙형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지료에 관한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있는 사안에서 일정한 요건 하에 지료를 인정함으로써 소유권 제한에 관한 대가 내지 보상에 관해서 합리적 조정을 허용할 필요가 크다.
3) 분묘기지권 성립 당시 무상이었다고 하여 영구적인 무상 사용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당사자의 합리적인 의사나 신뢰에도 부합하지 아니한다.
가) 토지소유자와 분묘기지권자의 분묘의 설치 및 존속에 관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상 약정을 한 토지소유자의 의사가 사정변경 여부와 상관없이 영구적인 무상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토지소유자로서는 토지의 가치나 분묘기지권자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분묘 설치 당시와 같은 상황에서는 무상 사용을 용인하지만, 토지개발 등으로 인해 무상 약정의 기초가 된 사정이 변경된 경우에는 분묘기지권의 존속은 보장하더라도 적정한 사용대가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분묘설치자로서도 토지소유자의 호의를 얻어 분묘를 설치하면서 동일한 인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나) 한편 분묘에 매장된 사람이 토지소유자와 분묘기지권자의 공동 선조인 경우와 같이 토지소유자와 분묘기지권자가 분묘의 설치 및 존속에 관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는 그들 사이의 무상 약정에 큰 문제가 없다. 승낙형 분묘기지권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토지(분묘기지)가 제3자에게 양도된 시점부터이므로, 분묘기지권의 존속으로 인해 사용·수익이 제한되는 불이익을 입게 된 토지양수인의 의사나 기대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토지양수인 입장에서는 양도형 분묘기지권과 마찬가지로 소유권 제한에 상응하여 지료를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토지양수인이 넓은 면적의 임야 등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설치된 분묘의 존재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4) 대법원은 이미 나머지 두 유형, 즉 양도형 및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지료 지급의무를 인정하였다. 승낙형 분묘기지권에 관해서만 지료에 관한 유상 약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영구 무상의 권리를 보장할 경우, 다른 유형의 분묘기지권과 균형이 맞지 않고, 거래안전을 해할 수도 있다.
가) ‘자기 소유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도 그 토지를 양도하면 그때부터 양도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하는데(위 대법원 2020다295892 판결 등 참조), ‘타인 소유 토지’에 무상 승낙을 받고 분묘를 설치한 사람은 사실상 영구히 지료 지급의무를 면한다는 것은 형평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타인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자기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보다 대세적으로 더 강력한 무상 사용권을 보장받는 것은 사회일반의 법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나) 분묘기지권은 등기 없이 성립하고 존속하므로 분묘기지권의 성립 유형이나 지료에 관하여 공시할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실제 토지양수인의 입장에서 분묘 설치 시기 또는 분묘 수호·관리권자(제사주재자)를 특정하거나, 분묘기지권의 성립 유형 및 지료에 관한 약정의 존부 등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승낙형 분묘기지권’에 관해서만 분묘 설치 당시에 유상 약정이 없었다는 이유로 나머지 유형들과 달리 영구적인 무상 사용권의 제한을 토지양수인에게 감내하도록 한다면, 거래안전을 해할 수밖에 없다.
5) 분묘기지권에 관하여는 민법상 명문의 근거가 없더라도 일정한 요건하에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변경 청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가) 분묘기지권의 경우, 성문법상 권리가 아니라 관습법상의 물권이고, 분묘기지권의 내용 중에는 명문의 근거 규정 없이 판례를 통해 형성된 부분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 무상 약정이 있는 분묘기지권의 유상 전환 청구권도 당사자의 의사와 거래 관행을 반영한 판례를 통해 합리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나)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미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기 전에는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지만,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때부터는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전환을 인정한 바 있다.
다) 분묘기지권은 발생이나 소멸, 변동 등에 이르기까지 권리의 내용이 민법상 지상권과 동일하지 않으며,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변경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나 당위성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무상의 지상권에 관하여 민법 제286조에 따른 지료증액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례(대법원 1999. 9. 3. 선고 99다24874 판결)는 무상의 승낙형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유상으로의 전환을 인정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3. 이 사건에 관한 판단
가. 이 사건 분묘는 설치 당시 분묘 수호·관리권자인 소외 3이 토지소유자인 소외 4의 승낙을 받아 설치한 것이므로, 이 사건 분묘에 관하여는 승낙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분묘 설치 당시에 분묘 수호·관리권자와 토지소유자가 동일인이 아니었던 이상, 양도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한다고 볼 여지는 없다. 그럼에도 원심이 이 사건 분묘에 관하여 양도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였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나.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지료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있더라도 유상으로의 전환을 인정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므로, 분묘기지의 현재 소유자인 원고는 지료를 청구할 수 있다.
1) 이 사건 분묘에 매장된 사람은 당시 이 사건 토지의 소유자였던 소외 4의 부모이다. 더욱이 이 사건 토지는 소외 4가 스스로 형성한 재산이 아니라, 부친인 소외 1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다. 이 사건 분묘 설치 당시 토지소유자인 소외 4와 분묘 수호·관리자인 소외 3 사이에 무상 약정이 있었더라도 이는 위와 같은 특수한 인적 관계가 전제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사건 분묘가 설치된 후 이 사건 토지의 소유자가 수차례 변경되어 토지소유자와 분묘의 수호·관리자 내지 매장된 망인들 사이의 특수한 인적 관계는 단절되었다.
특히, 소외 4와 소외 3은 이 사건 분묘에 매장된 망인들의 자녀로서 이 사건 분묘의 설치 및 존속에 관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관계였다. 따라서 양도형 분묘기지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외 3의 무상에 관한 신뢰보다는 분묘기지권의 존속으로 인해 사용·수익의 제한이라는 불이익을 실제로 입게 된 양수인들의 의사나 기대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타당한데, 토지양수인들은 소유권 제한에 상응하여 지료를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기대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2) 이 사건 분묘 중 소외 1의 분묘는 1975년경, 소외 2의 분묘는 1985년경에 각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설치된 소외 2의 분묘를 기준으로도 설치 시점부터 이 사건 소장 송달일(2021. 6. 22.)까지 이미 36년이 넘게 경과하였다.
3) 이 사건 토지는 이 사건 분묘가 설치된 후 이용상태나 활용가치가 현저히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건 토지는 원래 지목이 ‘전(田)’이었으나, 원고가 소유권을 취득한 후 그 지상에 병원 등의 건물을 신축하는 등으로 개발하여, 이 사건 분묘기지를 제외한 대부분이 ‘대지’로 변경되었다.
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 속에 유상으로의 변경 청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 그 청구일부터 피고의 지료 지급의무를 인정한 원심의 부가적·가정적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
4. 결론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마용주(재판장) 노태악 서경환(주심) 신숙희